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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재방영(상영)관

#2-6(완결). 아직 못 다했던 4가지 이야기 (애니메이션 《울려라! 유포니엄》 6부)


애니메이션 이야기하는 낭인,

스카이포스터입니다.


《울려라! 유포니엄》에서 할 수 있을 큰 줄기의 이야기는 다 드린 것 같습니다. 드디어 이번이, 《울려라! 유포니엄》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자잘하게 하고 싶었던 3개의 이야기, 그리고 이 작품을 정리하며 하고 싶었던 에필로그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울려라! 유포니엄》 이야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스카이포스터의 애니메이션 재방영관]

두번째 이야기. 《울려라! 유포니엄》


“아직 못 다했던 4가지 이야기”, 시작합니다.


※ 이 포스트는 영상에서 조금 더 자세한 정보를 접할 수 있습니다. ※




※ 이 포스트는 TV 애니메이션 《울려라! 유포니엄》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


1. 교토 애니메이션, 또 한 번의 진화


이 작품이 주목을 받은 제일 큰 요소가 작화라는 건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예전부터 섬세한 작화를 보여준 쿄애니(교토 애니메이션)였지만, 이 작품은 그 작화가 한층 더 발전한 느낌이 들죠. 자연스러운 볼터치 배색을 기반으로 캐릭터의 피부 질감이 잘 살아있고, 빛이 강해지는 때의 빛 표현과 그 빛에 반짝이는 금관악기의 질감 표현 또한 사진과 크게 차이가 없을 정도로 섬세하게 살아있습니다.



마치 카메라가 촬영하는 듯한 효과를 준 것도 이 작품의 작화 질을 한 단계 높게 보이도록 일조했던 부분입니다. 카메라의 초점 효과를 사용해 중요한 부분만 선명하게 하고 나머지는 흐리게 처리하는 연출은 이 장면에서 다방면으로 응용되고 있죠.



카메라로 보는 듯한 효과에서 파생된 것이 바로 이따금씩 연출되는 핸드헬드(Handheld) 효과입니다. 핸드헬드란, 카메라를 직접 손(Hand)으로 들고(Held) 찍는 방법입니다. 삼각대 등에 고정시킨 카메라와 달리, 사람의 움직임을 미세하게 반영할 수 밖에 없죠. 이 촬영 방식은 보통 자연스러운 한 인물의 1인칭 시선을 연출할 때 쓰거나, 화면에 다소 불안한 느낌을 반영하는 목적으로 사용되곤 합니다. 이 작품에선 상당히 자주 볼 수 있는 효과이니, 유심히 보시길 바랍니다.


또 하나는 바로 주변 자연물을 활용한 연출입니다. 이 작품에서 사용되는 자연물은 기본적으로 작품의 배경을 만들기도 하지만, 가끔씩 단독으로 배치되어 상징으로써 활용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쿠미코의 방 안에 배치된 이 선인장은 쿠미코가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지만 잘못한 것 같은 애매한 기분이 들 때마다 말상대를 해주는 사물입니다. 즉, 쿠미코는 이 선인장을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 선인장엔 가시가 없습니다. 이것은 쿠미코가 본래 자신의 본질은 가시를 세우는 선인장과 같지만, 과거의 트라우마 등으로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 누군가에게 피해가 된다는 걸 알고 숨기고 사는 모습과 비슷해서 배치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나비나 달과 같은 자연물이 이 작품의 표현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있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렇게 자연물에 상징을 입히는 연출은 이 작품의 총감독 이시하라 타츠야(石原立也) 씨보다는 시리즈 감독 야마다 나오코(山田尚子) 씨의 색이 더 짙게 들어간 연출로 보입니다. 야마다 나오코 씨가 총감독으로 들어가는 작품을 보면 이런 연출이 상당히 강해지는데, 이 감독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 특별편으로 따로 언급해 드릴게요!


2. 음.관.넓.얕. : 음악에 관한 넓고 얕은 지식


이 작품에서 나오는 연주는 정말로 리얼합니다. 특히 못 하는 때를 들어보면 시작 타이밍도 제각각이고 음도 이탈하며 심지어는 시원하게 삑사리 소리까지 들을 수 있죠. 이 작품의 연주가 이렇게까지 리얼해진 것은 실제로 아직 실력을 올려야하는 학생으로 이뤄진 관현악부를 연주의 녹음에 섭외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의 연주 녹음을 담당한 분들은 센조쿠 학원 음악 대학(洗足学園音楽大学)에서 1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관현악부, 프레시맨(Freshman-대학교 1학년) 윈드 앙상블입니다. 본래 절망적인 실력의 관현악부가 실력을 끌어올려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는 모습을 만들기 위해 신경 쓴 디테일이죠.


이 작품의 엔딩곡의 제목인 “Tutti!”는 모든 악기가 연주로 들어올 것을 지시하는 이탈리아 어입니다. 보통 악기 솔로를 위해 빠져있었던 악기를 다시 불러올 때 사용하며, 이런 대비 효과를 이용해 화려한 피날레를 만들어내는 연출이죠. 이렇게 Tutti가 피날레 연출을 위해 사용하는 지시어라고 생각하면, 이 노래가 “우리들이 (당신들의) 마음을 뺏겠어!”라며 선언하는 가사로 시작하는 것도 꽤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쿠미코가 중학교 시절의 콩쿠르 곡은 자크 오펜바흐의 “지옥의 오르페우스”이고, 이 작품에서도 언급되듯 흔히 “천국과 지옥”으로도 알려진 작품입니다. 이 중에서도 작품에서 사용된 부분은 이 곡의 피날레인 “캉캉”이며, 프릴 치마를 입은 유희들이 춤추는 모습이 생각나는 그 “캉캉”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는 원래 비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죠. 사망한 아내 에우리디케를 데리러 지옥에 가 자신의 리라 연주로 아내를 이승으로 데려올 수 있었는데, 이제까지 잘 지켰던 뒤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막판에 어기는 바람에 아내는 다시 저승으로 빨려들어갔고, 그래서 평생을 슬퍼하며 살았다는 이야기죠. 이런 오르페우스를 표현한 곡이 왜 이렇게 경쾌하냐면, 이 곡의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가 허위로 가득한 귀족들을 풍자하기 위해 인물의 설정을 비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르페우스나 에우리디케나 이미 서로에게 마음이 떠난 사이로 설정이 바뀌었고,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저승으로 되돌리기 위해 일부러 뒤를 돌아본 것이 되었으며, 이 둘의 허위 의식이 끝난 이 장면을 피날레로 보고 만든 곡이 바로 “캉캉”이 되는 거죠.



이렇게 진작에 깨졌어야할 관계가 깨지는 모습을 그린 이 곡이 쿠미코의 중학교 콩쿠르 곡으로 불려온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쿠미코는 고등학교 입학 첫날에 모든 것을 리셋해보고 싶단 바람과 달리 한동안 중학교 때의 기억 혹은 트라우마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레이나와의 일화나 선배와의 일화가 있죠. 그리고 쿠미코가 드디어 레이나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 장면에서 다시 이 곡이 소환된 것은, 드디어 쿠미코가 온전히 중학교 시절을 정리함을 보여주는 의도라 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피날레이자, 화려한 이별이죠.



쿠미코와 레이나가 산에 올라 연주한 곡인 “사랑을 발견한 곳”은 중학교 시절 송별회 곡으로 등장합니다. 중학교 시절을 정리하는 곡을 그 순간에 다시 불어들인 것은, 중학교 시절을 정리해 다시금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고자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음악이 나올 땐 하즈키가 슈이치와 잘 되고 못 하고서 감정을 정리하는 모습도 볼 수 있죠. 역시 과거를 정리하는 새로운 시작이라 볼 수 있습니다.



레이나가 작품 초반에 연주했던 곡은 민족주의 작곡가 드보르작의 “신세계로부터”고, “신세계 교향곡”이라고도 불리는 곡의 2악장입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곡인 이 곡을 레이나가 연주한 것은, 중학교 때 마음껏 열정을 쏟아부었던 때와는 달리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던 당시의 관현악부를 보며 답답한 마음에 중학교 시절을 추억하기 위한 의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콩쿠르 곡 중의 과제곡인 타사카 나오키의 “프로방스의 바람”은 실제로 존재하는 곡이며, 반대로 자유곡인 호리카와 나미에의 “초승달의 춤”은 가상의 곡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이 작곡가의 이름엔 항상 이 작품의 음악 감독, 마츠다 아키토라는 이름이 같이 다니기 때문이죠.


3. 교감과 과잉 사이, 그 어딘가


시작하기 전에, 이 파트는 아직 의견이 정리되지 않은 논란적인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여기선 주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이 작품이 주목받았던 건 사실 여성의 동성애 코드를 연상하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쿠미코와 레이나, 이 둘을 상당히 근접한 거리에 두고 이 둘의 얼굴을 가까이 잡는 클로즈업 장면이 나왔었죠.



저는 사실 그렇게 좋게 보는 쪽은 아닙니다. 이 정도의 장면 연출은 두 사람의 얼굴로 화면을 꽉 채운 시점부터 이 두 사람이 서로 말곤 아무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건데, 이 둘이 그 정도까지인지는 좀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후속작 《울려라! 유포니엄 2》의 이야기를 보고 돌아오면 특히 더 의문이 듭니다. 또 쿠미코에게 영향을 줄 부분이 많았던 소꿉친구 슈이치를 조금 더 활용했으면 이야기가 더 풍부해졌을 지도 모른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저는 있는 터라, 논란이 될 만한 장면에 시간이 할당되는 게 아쉽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했죠.



하지만 이 부분이 어느 쪽으로 의견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 하는 이유는, 이 둘이 친구 정도의 관계는 가볍게 넘어서서 서로를 향한 강력한 동경으로 묶인 관계라는 것에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서로가 상대방이 되고 싶어하고, 또 여러 가지 오해에 시달렸던 둘이 오해없이 온전히 인정해주는 상대방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이상하게 볼 부분은 아닐 겁니다. 너무나 특별한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한다면, ‘배신하지 않을거야?’와 같은 대사는 이 특별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은 불안감에서 나왔다고도 할 수 있죠.


어느 쪽 의견을 받아들일 지는,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 에필로그 ]


달려가고자 한다면 그 모두가 청춘이다.


저에게 이 작품의 키워드를 말해보라고 하신다면, 저는 ‘열정’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이제까지 실컷 사람 사이의 갈등, 정의, 이런 군상극으로 이 작품을 말해두고 마무리는 왜 열정이냐고 하실 분도 계실 것 같네요. 하지만 이렇게도 생각해보죠. 자신이 뭔가를 하고 싶다거나 뭔가를 지키고 싶다는 열정이 없고서야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벌어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말이죠. 결국 이런 열정이 그 사람의 생각이자 가치관이 되는 것이고, 그 가치관의 차이가 바로 갈등을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열정을 말하기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열정을 쏟아부어도 이 작품의 쿠미코만큼이라도 얻은 게 없는 절망적인 결과를 맞이한 사람도 있고, 이 열정을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걸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열정이 아름다운 것이기에, 어떤 행동의 앞에 구실로 세우기 좋은 것이 되는 게 바로 열정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즉, 순수한 열정은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것이죠. 청춘이니까 열정이 있어야 되는 게 아닙니다. 열정이 있다면, 모두가 청춘인 거죠.



모두들 각자의 열정을 품고 사는 사람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시길 바라면서.


온전히 나 자신에게서 나온 순수한 열정은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는 걸 다시금 떠올려주시길 바라면서.


이런 그들의 열정이 담긴 음악을 아름답게 들어주시길 바라면서.


제 열정 역시 듬뿍 담아본 2번째 이야기를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번주 금요일엔 YouTube 한정 콘텐츠로,

《울려라! 유포니엄》을 보신 분들을 위한 《울려라! 유포니엄 2》의 가이드 리뷰 영상이 올라갈 겁니다.

그리고 세번째 이야기인 《울려라! 유포니엄 2》8월 초 업로드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더운 여름 잘 보내시고,

이제까지 스카이포스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