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이야기하는 낭인,
스카이포스터입니다!
온갖 마감들로 넘쳐나는 일복 터진(?) 연말입니다. 매번 제 이야기를 봐주시면서, 그리고 저를 응원해주시면서, 저와 함께 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 드릴게요! :)
아마 이 글을 찾으러 오시는 분들에게 이 이상 긴 인사는 부담스러우실 것 같으니 빠르게, 올해를 마무리 짓는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작년보단 스케일을 좀 많이 줄였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2018년 극장 개봉(한국 기준) 애니메이션 결산을 해봅니다. 제가 보지도 않은 작품이 이러네저러네 이야기하는 건 자신이 없어서 올해부턴 내년 기대작 파트를 없애고, 제가 직접 봤던 작품만 다뤄 결산 포스트로 엮었습니다.
올해 제가 극장에서 직접 본 작품은 6개. 이 중, 아직 정식으로 개봉하지 않은 작품인 <미래의 미라이>를 뺀 다섯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포스트는 시놉시스 내지는 PV로 공개된 내용 안에서 스포일러 없이 다루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서 스포일러로 비출 수 있는 내용을 다룰 수도 있으니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들은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1.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개봉일: 3월 29일 / 제작사: 사이언스 사루 / 감독: 유아사 마사아키 / 캐스트: 호시노 겐, 하나자와 카나
"아가씨, 늘 밤을 밝히는 밝은 등불이기를"
일본 현지에선 '천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작품으로, 소설가 모리미 토미히코가 지은 같은 이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입니다.
첫 인상부터 독특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인상 깊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서양의 애니메이션이 과장과 상징을 많이 쓰는 것이 특징이고, 동양의 애니메이션이 상대적으론 좀 더 사실적인 모양을 추구한다면, 이 작품은 두 특징의 장점을 고루 섞어낸 작품입니다. 이건 이 작품만의 특징이 아닌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이지만, 특히 이 작품은 이런 특징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자유롭고 유쾌하게 사람의 신체를 늘리고 줄이고, 달마를 비롯한 동양적인 상징, 책과 책이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대사 등등, 많은 문화적인 상징과 압축이 꽉꽉 녹아들어간 작품이죠.
이 작품은 선배와 검은 머리의 여성, 두 캐릭터를 중심으로, 성인이라는 나이대와 아직은 가족에게 보호받아야하는 상황이 묘하게 겹친 대학생이라서 느끼게 되는 묘한 패배감, 그리고 여러 시행 착오를 거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며 그 패배감을 조금씩 극복해나가는 모습이 인상깊게 남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이들의 청춘 시대의 마지막 고민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그 답을 한 번 지켜보시길 바랍니다.
단,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동양 및 일본 전통 문화에 생소하다면 어려운 표현들이 많고, 성희롱 표현이 몇몇 장면에 등장합니다. 검은 머리의 여성이 그 결례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캐릭터의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단서이기는 하지만, 이런 표현에 민감하신 분들이라면 참고하세요!
2.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Take on Me~
개봉일: 5월 10일 / 제작사: 교토 애니메이션 / 감독: 이시하라 타츠야 / 캐스트: 우치다 마아야, 후쿠야마 쥰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 극장판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Take on Me~>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릿카가 중2병이기에 보여주는 기상천외하면서도 애정이 가는 행동, 그리고 유우타와 두근두근한 장면들을 보는 것만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기 참 미안하지만, 보러 가기 전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큰 기대를 안 하고 간 게 오히려 이 작품을 더 인상깊게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중2병을 그저 웃기고 매력적인 소재로만 본 것이 아니라, 그 또한 사랑스러운 성장기의 한 모습이라는 따뜻한 시선을 보내면서 말 그대로 중2병 이야기를 '완성'했다는 느낌을 받았죠.
말이란 게 단어 하나, 모음 하나, 자음 하나, 들어가는 맥락 하나가 바뀌면 아예 뉘앙스가 바뀌는 것임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던 결말 연출도 그렇고, 시작은 중2병이라는 기상천외한 캐릭터에서 시작했지만 점점 성장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무게감을 올리던 스토리까지. 이것보다 더 완벽하게 시리즈를 마무리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어떤 멋지고 기발한 한마디를 이 작품에 들이민다고 한들 제목을 그대로 쓰는 것보다 더 이 작품을 표현하기 적절한 한마디는 없지 않았나 싶어요.
3.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개봉일: 7월 19일 / 제작사: P.A.Works / 감독: 오카다 마리 / 캐스트: 이와네 마나카, 이리노 미유
"이별 또한 끊임없이 이어지는 역사의 한 점일 뿐"
감동 애니메이션하면 빠지지 않는 작품,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로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 오카다 마리의 감독 데뷔작,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입니다.
이 작품은 전쟁이라는, 개인의 힘으론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뒤엉키며 만난 요르프 족의 마키아와 인간 아기 아리엘을 만나 격동의 시기를 함께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한 사람의 요르프 족, 마키아를 중심으로 시작한 이 이야기는 인생에서 마주치고 스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꽉꽉 채워 담아내죠.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가 너무 거대해서 오히려 관객들의 눈물을 흘리게 하려는 목적이 보이는 장면만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1분 1초를 꽉꽉 채워서 보여주는 장면들은 감정 이입을 만들어내기 어렵게는 만들어도 절대 근본없이 무대책으로 울리고 보는 작품은 아닙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거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를 만들어놓고선 이 작품은 이 이야기를 그저 역사의 한 지점으로 줄여서 끝냅니다. 저는 이 결말에 이르러서 제발 눈물이 펑펑 났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었으니까요.
오카다 마리 감독이 인간이라는 존재에 꽤 희망적이고 사랑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것도 넌지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한 시점에 살았던 한 명의 인생을 역사의 거대한 흐름 위에 얹은 이 작품의 시도에 박수를 보냅니다.
4. 리즈와 파랑새
개봉일: 10월 9일 / 제작사: 교토 애니메이션 / 감독: 야마다 나오코 / 캐스트: 타네자키 아츠미, 토야마 나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을 믿기에 헤어진다"
<울려라! 유포니엄> 시리즈의 완전 신작 애니메이션의 첫번째 작품이자 메인 스토리에서 살짝 벗어난 스핀 오프 작품, <리즈와 파랑새>입니다.
먼저 <울려라! 유포니엄> 시리즈를 본 사람의 시선으로 이야기해보죠. 처음은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울려라! 유포니엄> 시리즈를 보고 있는데 <울려라! 유포니엄>과는 뭔가 많이 다른 그림이 나오니까요. 그런데 이 작품을 보면, <울려라! 유포니엄> 시리즈의 고유 특징이었던 악기 질감, 피부 질감까지 디테일하게 살린 색 표현이 아닌 이 작품 특유의 동화풍 그림만큼 이 이야기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닫는 건 저는 단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그림이 다르다는 이질감을 밀어두고서라도 가치 있는 작품입니다. <울려라! 유포니엄> 시리즈의 팬이시라면 더더욱 권해드려요.
이 작품은 노조미와 미조레, 이 두 친구의 이야기를, 마침 학교 관현악부의 콩쿠르 곡 제목이기도 한 "리즈와 파랑새"라는 동화와 붙여 풀어낸 이야기입니다. 외톨이 리즈와 그런 리즈에 찾아온 친구 파랑새. 동화 속 이 두 인물이 노조미와 미조레에게 어떻게 붙는지를 지켜보면, 이 작품은 한순간도 떨어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친한 친구라서 오히려 쉽사리 말하기 힘들어지는 감정과 고민을 이렇게까지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관현악부 합주 장면은 섬세하지만 분명히 형태를 가지고 쌓여있었던 감정이 말 그대로 폭발하는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죠.
이전부터 쉬이 놓치게 되는 미세한 동작에 의미를 부여해 표현하는 섬세한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스타일이 정점을 찍은 작품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표현을 인식하지 못 했던 사소한 동작이 해주고 있다는 걸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5.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개봉일: 11월 15일 / 제작사: 스튜디오 볼룬(VOLN) / 감독: 우시지마 신이치로 / 캐스트 : 타카스기 마히로, Lynn
"우연이란 이름으로 감춰진 필연이었던 우리의 인연"
소설가 스미노 요루가 지은 같은 이름의 유명 소설을 애니메이션화한 작품,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입니다.
이 작품의 원작은 아마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 같은 유명한 소설이죠. 연분홍색 벚꽃의 봄 향기가 나는 표지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기묘한 제목이 궁금증을 자아내고, 그 안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가 의외로 인생과 인연의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면 그 결말은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는 작품이죠. 그리고 이 애니메이션보다 먼저 나왔던 영화도, 애니메이션인 이 작품도 원작 소설의 이 메시지를 잘 전달해주고 있죠.
다소 사교적이지 않고 조용한 성격의 남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인 여자 주인공 사쿠라를 만나 변해가는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기괴하다면 기괴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이 작품의 제목이 이 둘의 인연과 성장을 나타내는 말로 변해가는지를 지켜보시면, 살아가는 것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될 겁니다.
덧붙여서,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이 작품은 원작 소설의 플롯을 충실하게 따라가지만, 연출에 있어서는 조금 더 극적인 화면을 많이 만들어놔서 원작 소설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는 다소 죽은 느낌이 듭니다. 이 부분은 원작 소설을 읽으신 분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니 참고 바랍니다.
정신없이 올해 봤던 극장 개봉 애니메이션 5편의 결산을 해봤습니다.
이제 2018년의 마무리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도 정말 좋은 작품들을 많이 봤지만, 내년에는 조금 더 많은 좋은 작품들이 제게 다가올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올해 극장 개봉 애니메이션 결산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 해 동안 안팎으로 저를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2019년에도 계속 될 저의 애니메이션 이야기, [스카이포스터의 애니메이션 재방영관/재상영관]을 예쁘게 봐주세요!
2018년의 마지막 포스트와 함께,
스카이포스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