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읽어주는 낭인,
스카이포스터입니다!
건강이 조금 안 좋아서 업로드가 많이 늦어졌습니다. 죄송해요! ㅠ^ㅠ
드디어 애니메이션 「빙과」의 스토리를 정리하는 마지막 포스팅입니다. 이제까지 몇 편의 포스팅에 걸쳐 스토리 정리를 해온 것도 어쩌면 오늘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쌓아온 것일 지도 모르겠네요. 그만큼 중요한 대단원의 막인 오늘의 이야기는 호타로와 에루, 이 두 캐릭터 사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 얼굴을 본 사이로 시작해, 아는 사람에서 같은 부 활동의 부원, 그리고 한 명의 친구를 거쳐 그 이상의 각별한 관계로 나아가기까지. 관계 안에서 변해왔던 호타로와 에루, 두 사람의 이야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멀리 돌아가는 히나> 세번째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마지막 편인 [22화. 멀리 돌아가는 히나遠まわりする雛]를 중심으로 다루고, 나머지는 참고용으로 다룹니다.
이 포스팅은 “스카이포스터의 10번째 내멋대로 리뷰 - 「빙과」 편”의 12번째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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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과」는 개인적으로 캐릭터의 개성이 뚜렷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로 자신의 생각을 직접 전달하는 일이 잦은 주인공 호타로는 물론이고, 고전부의 부원인 사토시, 마야카, 에루의 개성 또한 매우 확고한 편이죠. 이 4명의 캐릭터는 겉보기에는 쉽사리 공통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남다른 개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토시가 고전부 부원 4명을 각각 다른 타로 카드에 대응할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각자의 개성이 매우 뚜렷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마야카와 사토시 사이도 이 둘이 왜 서로를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언뜻 이해가 잘 안 될 만큼 대비되는 지점이 명확했지만, 호타로와 에루는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다고는 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다른 개성을 확립하고 있는 캐릭터입니다. 그나마 사토시와 마야카 사이는 일반적인 고등학생의 생활이라는 근본적인 공통점이라도 있었지, 호타로와 에루 사이는 이런 근본적인 공통점 조차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1인칭의 주역인 호타로는 호타로가 에루를 ‘무모’하거나 ‘비효율’적이라고 언급하는 경우는 꽤 많이 있죠. <빙과> 편에서 에루를 언급하며 “에너지 효율이 너무 낮다”거나, [5편. 대죄를 범하다]에서는 사토시를 향해 화를 내는 마야카에게 아무런 효과도 없는 말리기 방법을 쓰는 에루를 보며 “무모한 인간, 치탄다 에루”라고 생각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에루를 만난 초반, [2화. 명예로운 고전부의 활동名誉ある古典部の活動]에서 부탁할 것이 있어 주말에 카페로 호타로를 불러 낸 에루가 호타로 앞에서 말하는 것을 망설이며 시간을 날리고 있을 때 호타로가 귀중한 휴일에 쓸데없이 만담할 생각이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장면이 있었죠. 충분히 호타로를 무례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할 말이 다 정리되어 있어서 자신을 부르고, 만났을 때 곧바로 이야기를 꺼내 정리할 것이라 생각한 호타로의 “에너지 절약주의”를 생각하면, 자리에 도착하고서도 말할까 말까 망설이며 뜸을 들이는 에루의 모습을 비효율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소중한 주말 시간을 뺏으면서 그 정도 준비도 안 해온 에루를 오히려 무례하다고도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서로를 각별하게 생각한다는 기류가 느껴진다 정도가 아니고 실제로 서로가 상대에게 마음이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여러 군데 있었습니다. [7화. 정체를 알고 보니]에서부터 호타로가 에루를 의식하는 장면이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쿠드랴프카의 차례>에서는 에루가 호기심에 휩쓸려 찍은 사진들을 봤다는 것을 의식한 호타로와 에루가 얼굴을 붉히는 장면도 있었고, 그 이후로 호타로와 에루 사이에 마음이 있다는 묘사가 간간히 들어갔었죠. 그리고 [21화. 수제 초콜릿 사건]과 [22화. 멀리 돌아가는 히나]의 두 편을 통해서 확실한 언어로 고백한 것은 아니지만, 각각 에루가 호타로에게, 그리고 호타로가 에루에게 각별한 감정이 있음을 증명하는 장면이 확실히 등장하면서, 이 둘 사이에 특별한 감정이 있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과 현실, 예의와 실리, 비효율과 효율, 감정과 이성, 감각과 논리, 그리고 장밋빛과 잿빛. 어디 하나 접점을 찾기 힘든 이 두 사람이 서로를 각별하게 생각하게 된 건 언뜻 보면 참 이해가 안 가는 일입니다. 이제까지도 계속 이 둘의 차이점이 드러나긴 했지만, 이 둘 사이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드러난 때가 바로 “수제 초콜릿 사건”을 해결할 때입니다. 이 사건 때는 마야카의 초콜릿이 사라진 것이 자신이 잠시 부실을 비웠기 때문이라며 자책하고 있었던 감정으로 격해져 있던 때라, 안 그래도 저돌적인 성격의 상징이었던 에루가 이 때는 더더욱 막무가내로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에루가 이렇게까지 감정적으로 나가버리니까, “에너지 절약 주의”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일을 마무리 지으려는 호타로의 이성적인 측면이 더욱 돋보이게 되었습니다.
그 기분을 이해한다고는 말 못 하겠어.
나는 너처럼 감정적이지 않으니까.
이렇게나 다른 두 사람이지만, 연출적인 부분에서도 강조되었듯 호타로가 유달리 에루의 호기심만은 냉정하게 내칠 수가 없겠다고 받아들였습니다. <빙과> 편을 말하면서도 언급했지만, 에루의 머리카락이 길게 뻗어나와 호타로를 휘감는 환상적인 연출은 앞으로 호타로가 에루에게 얽혀 들어갈 것이라는 암시를 가장 강력하게 하는 연출이었고, 「빙과」라는 작품 안에서 아예 이야기의 한 패턴으로 굳어져 버렸죠.
「빙과」의 시작이자 전부라고 할 수 있었던 ‘이 장면’
이런 호타로의 행동에 대해서 주목할 만한 일화가 바로 [1화. 전통있는 고전부의 재생]의 B파트에서 호타로가 해결했던 “무당거미 클럽 사건”입니다. 사실 이 “무당거미 클럽 사건”은 호타로가 음악실까지 가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작한 사건이었죠. 에루의 호기심을 거절하지는 못 하겠고, 그렇다고 에루가 반드시 자신에게 물어보러 올 “음악실의 귀신” 사건을 해결해주기 위해 음악실까지 가기는 비효율적이니 자신이 움직이고자 하는 동선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무당거미 클럽” 사건을 끌어들인 것이죠. 흥미로운 방식으로 비효율을 피해간 방법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사토시는 오늘의 에너지를 절약하고자 했던 방식이, 길게 봤을 때는 에너지 절약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조언하죠.
치탄다 양이 왔을 때, 왜 그냥 ‘몰라’라고 하지 않았던 거야?
그게 바로 오늘 호타로의 근본적인 실수야.
실제로 호타로는 이제까지 쭉 그렇게 해왔잖아.
여기서 호타로가 누군가 자신에게 부탁을 해올 때 그냥 단순하게 거절하는 방식을 취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마야카가 호타로를 ‘게으른 녀석’이라고 상당히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도, 남이 보기엔 여유로워 보임에도 자신이 생각하기에 에너지 절약에 벗어나는 일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봤기 때문에 생긴 시선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번은 이제까지 호타로가 취해왔던 방식이 아니었음을 사토시는 알았습니다. 호타로가 “무당거미 클럽”의 가입을 권유하는 메모를 굳이 자작하지 않아도, 에루가 왔을 때 ‘오늘은 작문 과제 때문에 안 된다’고 똑 부러지게 말하는 간단한 방법도 있었거든요. 이 점을 간파한 사토시는 앞으로 더욱 더 호타로가 에루와 얽힐 것이라고 말한 것이구요. 실제로도 에루의 외숙부에 관한 수수께끼를 호타로가 풀어주는 상황이 되면서 얽혀도 단단히 얽혀버렸습니다.
오레키 씨라면... 어쩌면...
그러면 호타로가 왜 에루에게만은 “에너지 절약”이라는 자신의 굳은 신념을 유지할 수 없었는지를 충분히 생각해볼만 합니다. 다른 집안 사이에 친목 교류가 잦은 명가 출신의 자제가 듣기 좋게 돌려서 말하는 대화 스킬이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긴 일이긴 하지만, <쿠드랴프카의 차례>에서도 목격했다시피 에루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앞뒤 다 자르고 직설적으로 요청하는 캐릭터입니다. 에루의 경우는 보통 사람들이 부탁해올 때 자연스레 밝히게 되는 ‘부탁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에루는 일단 부탁하고 싶은 본론 먼저 꺼내고 상대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오면 그제서야 이런 사정이 있었다고 풀어내는 타입이죠. 굳이 <쿠드랴프카의 차례>에서 에루가 취했던 부탁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에루가 마성의 대사인 ‘신경 쓰여요!’를 할 때는 전부 다 이런 구조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에루가 이런 태도를 자주 보이는 이유는 일단 지금 생각나는 것 먼저 하고 나서야 생각을 정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에루의 저돌적인 태도 때문에, 기억력이 좋고 성적 우수자라는 특징을 달고 있음에도 호타로는 에루를 ‘천연’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작품 외부에서는 에루에게 민폐를 끼치는 캐릭터라는 불명예(?)를 안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머릿속에서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로 바로 말하는 타입은, 반대로 말해 자신이 말한 것 이외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대단히 솔직하고 신뢰가 가는 모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쿠드랴프카의 차례>에서 부탁하는 것의 달인인 이리스가 에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밖에 말하지 못 하는 건 너의 약점이지만, 때로는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무기이기도 해.”라는 조언을 해준 것도 에루의 저돌성이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을 파악한 적절한 조언이라고 할 수 있죠. 1
호타로가 에루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도 에루의 부탁하는 방식이 정말 너무나도 솔직하게 진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입식 교육이라는 다소 불명예스러운 공통점이 있는 한국과 일본에서, 자신이 궁금한 것을 온전히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이렇게 하라면 하는 거지 뭔 질문이야’라는 느낌으로 불이익을 받게 만드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조심스럽게 질문을 꺼내서 대답할 낌새가 안 보이면 얌전히 철회하거나, 겉으로는 질문이 아닌 척 만들고 결과적으론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으려는 목적으로 이끄는 방식을 취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부탁하는 말의 속내에 드러난 말과는 다른 어떤 의도를 감추는 형태를 띄는 것이죠. 에루가 만약 이렇게 기술 좋게 질문을 취해 오는 사람이었으면, 호타로는 단호하게 대답을 거절했을 겁니다. 무엇을 숨기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에 대답해주는 위험을 감수할 이유도 없고 상대 쪽에서 이 사람이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겠다 싶으면 알아서 철회할 테니, 거절하는 일관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제일 현명한 대처 방법이죠. 하지만 에루도 그렇게 내쳐버리기엔 에루가 궁금함을 표현할 때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눈빛이 같이 반응하고 있죠. 난 정말 이게 궁금하다는 의도 하나만이 에루 전체를 지배하는 것 같은 저돌적인 솔직함을, 타인의 마음을 무심하게 생각하지 않는 호타로는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호타로가 가끔씩 말을 좀 험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걸 장난으로 넘길 줄 아는 상대(주로 사토시)에게 하거나, 선을 벗어났다 싶으면 바로 사과하는 행동을 통해서 호타로가 타인의 마음에 그렇게 무심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16화. 연봉은 개어 있는가]는 호타로의 이런 측면을 확실히 보여준 일화죠.
어차피 호타로가 에루의 궁금증을 거절할 만큼 뻔뻔한 성격이 아니긴 했지만, 아무래도 처음에는 호타로가 에루의 마이 페이스에 질질 끌려다니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6화. 대죄를 범하다]에서 예의를 차리는 것이 이미 몸에 습관이 되어버린 그 에루가 화를 낸다는 하기 싫은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밝히면서 “에너지 절약”의 호타로와 의외의 접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죠. 그리고 점점 에루의 호기심에 끌려가는 것만이 아니라, <쿠드랴프카의 차례>에서처럼 자신이 정말 안 되는 상황에서는 적당히 피할 줄도 알고, 자신의 “에너지 절약”이라는 신념에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양보해서 에루에게 자연스레 맞춰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호타로는 에루라는 새로운 관계를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변해갔습니다. 그리고 에루는 자신에게 필요한 일이 아니면 하지 않아서 고집스러운 게으름뱅이라는 타이틀이 있었을 지도 모르는 호타로의 이면에 숨겨진 인간다운 면을 고전부 부원들 앞에서 끌어낸 인물이 되었죠.
이렇게 상대적으로 둥글둥글해진 호타로가 드디어 자신이 이렇게나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된 치명적인 사건이 바로 [멀리 돌아가는 히나]입니다. 단순히 이키비나마츠리에서 히나 역을 맡을 에루 옆에서 우산을 들어주며 같이 걷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호타로는 자신이 이 행사에 흔쾌히 참가하겠다고 말한 것이 잘못되었음을 알았습니다. 2
이런... 좋지 않아. 이건 좋지 않아.
아마 어떻게 해서라도 나는 이곳에 오면 안 됐어.
내 “에너지 절약 주의”가 치명적으로 위협받고 있어.
호타로가 학교의 조례도 아니고 학교의 수업도 아니라 굳이 갈 필요가 없는 ‘행사’에 참가한다는 것은 호타로의 “에너지 절약 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행동입니다. 게다가 에루의 부탁도, 호타로가 사정이 안 될 것 같다고 이야기만 했으면 에루가 호기심을 드러내는 불가피한 상황도 아닌 이상 거절하기도 상대적으로 쉬운 부탁이었죠. 그런데 이런 상대적으로 거절하기 쉬운 부탁을 누군가가 자신을 떠밀어서 수락한 것도 아니고 호타로 자신이 자발적으로 수락합니다.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틀을 깨버린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드디어 호타로 자신이 눈치채 버린 결정적인 사건이었죠.
치탄다가... 안 보여. 신경 쓰여. 신경 쓰여.
만약에 지금 홍화를 꽂고 눈을 내리뜨고 있는 치탄다를 정면으로 본다면, 그건 얼마나...
문제는 호타로가 자기 자신의 신념을 깨고 나왔다는 것을 깨달은 것에서 더 나아가, 호타로가 에루의 상징과도 같은 말인 ‘신경 쓰인다’는 자기가 직접 하면서까지 행사를 위해 히나로 변장한 에루의 얼굴을 보고 싶은 호기심에 사로잡혔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자신의 신념을 깼다는 것을 알게 된 충격. 여기에 자신이 이제까지 유지했던 신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신념을 만드는 것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기묘한 이끌림. 이 두 개가 합쳐져 호타로에게 이제까지는 없었던 큰 동요를 만들어내게 되죠. 이 때의 장면이 다분히 환상적이고 ‘장밋빛’의 연출을 떠올리는 밝은 화면으로 연출된 것 또한 호타로 안에 있었던 ‘장밋빛’의 발견이자 혼란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호타로를 배웅하며 같이 걸어가는 길에서, 에루는 자신이 치탄다 가문이라고 하는 농업이라는 가업을 이어가며 카미야마라는 이 마을을 지키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밝힙니다. 그리고 경영을 통해 생산을 전략화하는 것보다는 상품가치가 높은 작물을 만드는 방법을 선택하고자 하며, 그래서 2학년부터 이과에 지원했다는 말을 꺼냅니다. 언제나처럼 자신의 말 뒤에 어떤 의도 하나도 숨기지 않고 진심으로 이 마을을 지켜나가겠다는 에루의 결의. 단순한 암기나 지식 습득만을 잘하는 자신과는 다르게 그 지식을 가공하는 법을 알고, 거기에 사람의 마음도 제법 잘 헤아릴 줄도 아는 소중한 상대인 호타로에게 에루는 이 결의를 전달하죠. 그리고 언제나처럼 사람의 진심을 무시할 수 없는 호타로가 말을 꺼냅니다.
그런데... 네가 포기한 경영적인 전략 말인데 내가 배우는 걸로 하면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답답해 했듯, 호타로의 이 당당한 고백은 사실 호타로의 상상이었다는 기막힌 반전이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사토시가 자신이 마음이 있는 상대인 마야카를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단순한 문제가, 사실은 이제까지 가지고 있었던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깨고 또 바꿔야할 지도 모르는 위험하고도 불안한 작업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또 사토시와는 불안함의 형태가 다릅니다. 사토시는 자신이 바꾸려는 바가 명확해서 새로 바꾼 가치관을 지키기만 하면 됐다면, 호타로는 사토시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호타로가 변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본인만 몰랐다가 나도 이런 “에너지 절약 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은 셈이죠.
이제까지 호타로가 겪었던 일도 충분히 호타로의 성장통이었습니다. 비록 누나에게 등 떠밀려 시작한 일이었지만, 에루라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 변해가며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사토시와 마야카와도 전에는 겪을 수 없었던 일들을 겪고 또 새로운 사람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실패도 있었고, 반대로 자신이 자만하고 싶을 만큼의 성과도 있었죠.
하지만 호타로의 성장통은 아마 이제부터 제대로 시작될 것입니다. 잿빛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자신 안에서 뜻하지 않게 발견한 장밋빛의 모습. 자신 안에서 자신이 바뀌어야할 지도 모른다는 하나의 씨앗을 발견한 호타로의 앞에 수많은 선택, 그에 따른 수많은 성공과 실패가 펼쳐질 것입니다. 어느 것이 성공이고 어느 것이 실패일지 모르는 불안한 앞을 보며, 이제 자신의 가치관을 어떻게 바꿔야할 지. 이제서야 시작한 성장통을 지금을 춥다고 느끼는 고난의 겨울로 볼지, 아니면 곧 따뜻함이 다가올 징조를 보는 기대의 봄으로 볼지. 이 모든 것을 정하는 것은 온전히 호타로의 몫일 겁니다.
추워졌네.
아뇨. 이젠 봄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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