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스카이포스터입니다!
설 연휴는 잘 보내고 계신가요?
설 연휴 중이라, 평소 업로드하던 시간에 올리기 힘들 것 같아서 일찍 올립니다.
어느덧 「빙과」 리뷰 포스팅의 연재도 많은 차수를 지났습니다. 예상했던 연재 기간인 한 달 가량보다는 훨씬 더 길어지게 될 듯 합니다. 연재를 개시하고 생각보다 할 이야기가 많았다는 것을 알고서 최근은 조금 압박감을 느끼는 중이지만, 무사히 잘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번부터 약 2편 내지 3편의 포스팅을 통해 단편집 <멀리 돌아가는 히나遠まわりする雛>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멀리 돌아가는 히나>는 애니메이션 「빙과」의 마지막 편의 제목이기도 하고, 원작 소설로는 「고전부 시리즈」의 4번째 권인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하죠. 애니메이션에서 편이 끝날 때 부제로 “Little birds can remember.”라는 타이틀을 띄우는 편은 전부 「멀리 돌아가는 히나」에 소속된 단편입니다. 여기에 속한 편은 화수로 1화의 B파트, 6편~7편, 19편~22편으로 총 6개의 반 편 정도 됩니다. [18화. 연봉은 개어 있는가連峰は晴れているか] 편은 유일하게 부제 타이틀 없이 끝맺는 편인데, 이 편은 원작 소설 「멀리 돌아가는 히나」에 실리지 않은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편입니다. 그러나 이 편 또한 단편 분량임을 고려하여 단편집이란 이름으로 <멀리 돌아가는 히나>의 내용을 다루며 묶도록 하겠습니다. 1
<멀리 돌아가는 히나> 이야기는 크게 두 개로 나눠서, “사람은 하나만 말하지 않는다”는 제목과 “관계를 통해 변화하다”는 제목, 이렇게 두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사람은 하나만 말하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인간은 입체적인 성질의 생물이라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설명을 보니까 좀 거창해 보이는데, 별 거 없으니 부담없이 따라와주세요! 오늘의 제목으로 묶을 편은 [6편. 대죄를 범하다大罪を犯す], [7편. 정체를 알고 보니正体見たり], [18편. 연봉은 개어 있는가]의 세 편입니다.
이 포스팅은 “스카이포스터의 10번째 내멋대로 리뷰 - 「빙과」 편”의 10번째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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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 7편, 그리고 18편을 “사람은 하나만 말하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묶은 것은, 이 세 편이 어떤 인물에 대한 새로운 면을 목격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6편은 호타로가 에루를 보는 시점, 7편은 호타로와 에루가 형제자매 관계에 대해 하고 있었던 생각이 교차하는 지점, 18편은 에루가 호타로를 보는 시점이죠. 에루의 호기심을 발단으로 호타로가 그 의뢰를 받아 사건을 해결하는 「빙과」의 반복적인 흐름 안에서, 행동의 발단이 되는 동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캐릭터들이 미처 보지 못 했던 다른 캐릭터 혹은 한 관계에 대한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6편. 대죄를 범하다]에서는 화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화내는 일이 상당히 드문 에루가 오늘은 웬일인지 수업 중에 선생님에게 화를 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에루의 반에서 수업 진도를 착각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것이 에루의 이야기였고, 에루는 이 자신에게 엄격한 선생님이 왜 진도를 착각했을까를 물어왔죠. 호타로가 착각할 만한 이유를 제시하자, 에루는 선생님이 헷갈릴 만도 한 상황이었다며 선생님에게 화낸 것을 잘못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마야카는 자신의 잘못을 학생이 잘못한 것이라고 학생을 혼냈던 선생님에게 화낸 것을 후회하는 에루의 반응에 곧바로 직언을 날렸다.
에루가 왜 화를 내지 않는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화내면 지치니까요’라고 대답한 것은 농담으로 넘기긴 했으나, 완전히 아니다고도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호타로가 이번에 자신이 화를 내게 만들었던 사건, 그러니까 선생님이 수업 진도를 착각한 사건의 이유를 물었던 에루를 보며 “사실은 화내는 것 따위는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죠. 물론 호타로가 에루라는 사람에 대해 이번만의 일화로 단정지을 수 없다면서 겸손해지자며 자신을 다그치지만, 호타로의 시선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호타로의 생각을 맞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하자면, 에루는 화내는 것 자체를 하기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은 하기 싫어하는 일은 자신이 금방 지쳐버리는 일이겠죠. 그러면 “지치는 건 하기 싫어요”라는 말을 농담이라고 넘긴 에루를 보며, 사토시와 마야카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을 리는 없겠죠. 농담이라고 하긴 했지만, 어쩌면 사토시와 마야카가 지은 당황스러운 표정이 둘은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나온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에루가 정말 농담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 이런 뻘쭘한 반응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7개의 대죄, 분노, 오만, 대식, 탐욕, 질투, 정욕, 나태를 말하면서 이 대죄가 아예 없는 사람은 사람으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다하지 못 할 것이라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 에루의 말. 농담으로 넘기긴 했지만 어쩌면 농담만은 아닐 지도 모르는 “지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에루의 말. 자신이 왜 화를 낼 만한 상황이었는지에 대해 굳이 그 이유를 생각해보려고 했던 에루. 그리고 그 이유를 알고서 화낸 것은 역시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뉘우치는 에루의 모습. 이 모습들을 지켜보며 호타로는 “오늘 하루동안 몇 번이고 치탄다를 의외라고 생각한 건지”라고 생각하죠. 특히 에루가 7대 죄악을 아예 없어서는 곤란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이제까지 에루가 동갑내기에게도 존댓말을 쓰며 예를 갖추는 사람이라는 면을 봤을 때 꽤 의외의 일면이라고 생각할 만합니다. 그러면서도 굳이 화낸 이유를 물어보고 자신의 화냄을 뉘우치는 모습은 또 ‘7대 죄악’의 ‘분노’를 싫어하는 모습이죠. 이렇게 호타로가 자신이 봤던 에루의 모습과 다른 일면을 이날 에루에게서 몇 번이고 발견했기 때문에, 호타로가 자신과 생각했던 모습과 다른 반응을 보였던 에루를 생각하며 마음대로 타인의 마음을 단정하는 ‘오만’을 저지를 수 없다고 자신을 다그쳤을 것입니다. 2
치탄다의 행동을 읽을 수 있는 경우는 있어도, 마음 속까지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이건 그거다. 대죄를 범하고 있는, ‘오만’이라는 거다.
[7편. 정체를 알고 보니]에서는 누나를 두고 있는 호타로와 외동딸인 에루의 입장이 서로 대비됩니다. 에루가 자매 관계를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광경이 여럿 등장했고, 뒤에서 그런 에루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호타로의 표정은 탐탁지 않았습니다. 에루가 놀러간 산장의 어린 두 자매를 보는 장면에선 둘의 사이 좋은 모습이 강조되었고, 호타로가 볼 때는 두 자매가 사이가 안 좋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장면이 강조되고 있어 이 분위기를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입장 차이는 곧바로 호타로와 에루가 같이 온천으로 향하는 중의 대화에서 명백해지죠.
- 허물 없는 상대가 언제나 곁에 있다는 게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 날, 간밤 중에 ‘목 매단 그림자’가 발견되었다는 제보를 받고 호타로와 에루는 사건을 조사하게 됩니다. 호타로는 몇 가지 현장에서 얻은 증거와 사토시에게 얻은 결정적인 단서를 토대로, ‘목 매단 그림자’는 자매 중에 동생이었던 카요가, 몰래 입고 나갔다가 비가 내려 젖어버린 언니 리에의 유카타를 말리던 모습이라는 결론을 내죠. 이 이야기를 들은 에루는, 형제자매 관계라는 것이 옷 하나도 못 빌려 입을 만큼 하나도 이상적이지 않은 모습일까, 라는 생각에 표정이 어두워지죠. 이에 비해 호타로는 형제자매 관계가 그런 이상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걸 이미 상정하고 있었기에 담담한 모습이었죠.
제가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하며 원작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 많이 하는 편이 아니지만, 본래 원작에서는 여기까지로 사건이 마무리됩니다. 애니메이션에서 나왔던, 신발 끈이 끊어져 곤란한 상황이 된 동생 카요를 리에가 엎고 오는 모습에 대한 묘사는 원작에선 없던 묘사죠. 이것은 애니메이션으로 넘어오면서, 물론 좀 더 대중적으로 납득할 만한 결론을 내기 위해서라는 상업적인 의도로써 추가한 묘사일 수도 있으나, 이상적인 형제자매 관계는 존재할 수 없다는 한 쪽 시선만에 치우치지 않도록 한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원작이 형제자매 관계에 이상적인 모습은 없다는 이야기로 끝났지만, 애니메이션에선 카요를 엎고 있는 리에를 발견함으로써 호타로가 이상적인 형제자매 관계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죠. 이를 통해서, 에루가 자신의 이상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호타로 또한 이상적인 관계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호타로와 에루가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아 생각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8편. 연봉은 개어있는가]에서는 호타로가 의외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사람 이름이 적힌 한자 읽는 법을 자주 틀리거나 사람 이름을 외우는 것을 상당히 못 하는 호타로가 먼저 기억을 꺼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독특했고, 자신의 생각을 바로 잡기 위해 자발적으로 도서관에 향하는 것도 독특한 일면이었죠.
이 모습을 보여준 호타로에 대한 반응은 당연하지만 뜨거웠다(...).
중학교 시절을 생각하며, 그 때의 선생님이 헬리콥터를 좋아했다고 말한 호타로의 혼잣말이 사토시와 마야카의 몇 가지 증언에 따라 어딘가 이상함을 느끼고, 호타로를 이를 조사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선생님이 벼락이 잘 떨어지지 않는 평지에 위치한 이 지역에서 벼락을 세 번이나 맞았다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는 것을 결정적인 증거로, 호타로는 선생님이 헬기를 좋아했던 게 아니라, 그 선생님의 또 다른 직업인 산악가의 신분으로써 산에서 조난 당한 동료를 구출하러 가는 헬기의 모습에 기대를 걸었다는 것을 알게 되죠.
이 이미지에 한자는 조난(遭難)입니다.
도서관에서 의문을 풀고 돌아가는 길. 에루는 궁금해하던 의문이 아니라 자신의 의문을 해결하러 나가는 호타로의 모습을 보며 호타로에게 그 이유를 묻습니다.
실제로는 그런 일이 있었는데,
오기는 헬기를 좋아했구나, 라고 속 편하게 말할 순 없지.
그건 ‘무신경’하다는 거야. 그야 당연히 조심해야 되는 법이야.
‘무신경’이라기보단, 그거야.
‘사람 마음도 모르고’라는 느낌이지.
이 때 호타로가 했던 말이, 6편에서 에루가 화내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일 것이야 생각했다가 자신을 다그쳤던 이유이기도 하죠. 호타로는 행동을 보면서 멋대로 그 사람 마음까지 단정짓는 성격이 아닌 것입니다. 행동을 판단하는 일은 쉽습니다. 눈을 통해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고, 어쨌든 사람이 할 수 있는 한에서의 ‘그나마’ 객관적인 판단이니까요. 하지만, 그 행동의 의도가 마땅히 이러할 것이라고 속 편하게 말하고 다니는 것은 비약일 것입니다. 살인 행위에 대하여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써 저는 절대로 옹호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살인이라도 누군가는 그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는 쾌락적인 이유일 수 있지만, 누군가는 당장 돈이 없으면 죽어가는 자신의 자식을 살릴 수 없는 부모가 돈을 뺏기 위해 벌이는 비극적인 선택이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가능한 몇 가지의 이유를 전부 무시하고, 행동을 오직 하나의 동기로만 규정하는 일은 그 자체로 폭력적인 일이라는 것을, 호타로는 느낌적으로 알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도서관에 향해 선생님에 대한 단서를 찾아 자신의 생각을 정정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참고로, 이 이미지에 쓰인 한자는 참(真)과 거짓(嘘)입니다.
생각보다 사람이 다이나믹하게 변화하는 입체적인 존재라는 점을 쉬이 생각하지 않고 넘겨버리곤 합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끼리 부딪히고 관계를 맺고 끊는 것이 빈번한 도시라는 장소에서라면, 이런 입체적인 인간의 특성을 고려할 심리적인 여유가 없을 지도 모르죠. 솔직히 말하면, ‘이 사람의 특성은 A다’라는 식으로 규정하는 것이 ‘생각하기 편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의 ‘역할’을 부여 받고, 그 부여 받은 역할에 따른 의무나 행동을 요구 받는 도시에서 의외의 일면을 고려한다는 것은 사람의 ‘역할’을 명확하게 규정해낼 수 없기 때문이죠. 이 사람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에 으레 하나의 방식으로 한 사람을 규정해버리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선적인 성격의 캐릭터보다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캐릭터가 더욱 더 흡입력이 있는 이유는, 사람은 언제고 의외의 일면을 품을 수 있는 역설적이고 역동적인 존재임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사람 안에는 하나만의 특징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는 것. 이것들을 생각하는 것은 언뜻 보면 복잡한 생각을 요구하는 작업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사실은 한두번 대화를 해보는 것만으로도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작업일지도 모릅니다.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타인의 생각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고 또 다시 만들어가면서, 사람들은 그렇게 천천히 관계를 맺어가며 또한 변해가는 것임을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을 지도...
오늘은 오레키 씨의 의외의 면을 볼 수 있어서 좋았아요.
다음 포스팅에서는 관계를 맺으며 변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멀리 돌아가는 히나>의 두번째 편입니다.
수요일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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