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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멋대로 리뷰

[내멋대로 리뷰/No.10/애니메이션] 「빙과」: Part.11 "<멀리 돌아가는 히나>: 달콤쌉싸름한 사랑을 말하다"


수요일 저녁의 애니메이션 읽기.

스카이포스터입니다!


오늘은 그야말로 「빙과」를 대표하는 ‘달콤쌉사름한 분위기’에 걸맞는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청소년기를 이야기하면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바로 이 때 즈음에 호기심으로 다가오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친구’라는 관계를 넘어서 그 이상의 각별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친구와는 다른 형태의 관계’를 위해 자신을 새로이 변화시켜야겠다고 생각하는 때. 그것이 바로 사랑을 하는 때이죠. 하지만 친구를 넘어서는 각별한 감정을 주고 받으면서 느끼는 만족스러움과 행복이 있는 반면 그와 동시에 친구 사이에서는 있지 않았던 또 다른 갈등을 마주하고 변화해야 하는 고통 또한 사랑에 포함되어 있는 것들이죠.


단편집 <멀리 돌아가는 히나>의 두 번째 이야기. 두 편에 걸쳐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포스팅에서 중심으로 다룰 화수는 [21화. 수제 초콜릿 사건手作りチョコレート事件]입니다.




이 포스팅은 “스카이포스터의 10번째 내멋대로 리뷰 - 「빙과」 편”11번째 포스팅입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전 편으로 넘어갑니다.


「빙과」라는 한 애니메이션 작품의 테두리 안에서 다룬 내용을 중심으로 했을 때,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사토시입니다. 사토시가 호타로와 함께 오락실에서 오랜만에 로봇 대전 게임을 했을 때, 호타로가 사토시의 플레이 스타일을 보며 변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토시가 변했다는 결정적인 증거죠. 승리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수단이라도 써야했던 그 시절. 승리라는 목적만이 중요했기 때문에, 자신이 지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던 그 시절. 사토시는 그 시절을 뛰어넘어 승부 안에서 승리가 아닌 다른 것에도 재미를 느끼며 한껏 여유로워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그렇다. 이게 지금의 사토시다.



사토시는 등장한 이래로 승부욕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빙과> 중에서는, 자신은 데이터베이스일 뿐이니까 결론을 내는 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고 확실하게 선을 긋고 있었죠.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에서도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이제까지 사토시가 보여온 여유로운 모습, 즉 새로운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토시의 이 여유로운 모습이 안정적인 모습이 아니라 불안한 모습으로 형성되었음은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에서도 호타로를 부럽다고 말하며 지었던 그늘진 표정에서부터 조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제가 <쿠드랴프카의 차례>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직접 발로 뛰어다녀도 근접할 수 없었던 범인을 부실 안에 얌전히 앉아서 추적해낸 호타로에게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따졌다가 곧바로 마음을 정리하는 모습에 대해 언급하겠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죠. 그 때의 사토시의 행동도, 지금의 여유로운 사토시의 모습에 있었던 불안정한 틈을 뚫고 이기고 싶었던 마음이 급작스럽게 분출되었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토시는 승리에 집착하던 과거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바꾸고 싶었던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호타로에게 보였던 격정적인 반응을 바로 거둬냈던 것이었구요.


이 억울한 표정 뒤에 바로 깔끔하게 정리한 표정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자신을 변화하고 있는 사토시가 보여준 불안정한 면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토시의 이런 불안정한 모습이 표면화된 사건이 바로 [수제 초콜릿 사건]입니다. 발렌타인 데이 날, 사토시에게 주려고 마야카가 직접 만든 초콜릿을 받을 수도 받지 않을 수도 없었던 사토시가 초콜릿을 훔친 것으로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던 사건이었죠. 하지만 작년처럼 수제가 아니면 받지 않겠다는 말을 해 자신을 악역으로 자처하면서까지 대답을 회피하는 일을 올해는 할 수 없었습니다. 올해는 이 사건에 새로운 인물인 에루가 개입하게 되면서 호타로 또한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었고, 범인이 사토시인 것은 진작에 알았지만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호타로는 적극적으로 사토시를 추궁하게 됩니다. 사토시가 초콜릿을 누군가 훔쳐간 것으로 치고 넘어가는 과정에서, 주머니에 넣기 위해 마야카의 진심을 담은 그 큰 초콜릿을 부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죠. 이것은 마야카의 진심에 최악의 형태로 대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아무리 남의 일이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호타로는 사토시에게 달려들게 됩니다.



이 때 사토시와의 대화에서, 사토시가 자신의 승부욕을 드러내지 않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선택한 이유를 말합니다. 과거의 사토시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것에만 집중했지만, 언젠가부터 사토시는 승리만에 집착하는 것이 덧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어느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집착을 버리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매일매일 해피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말하고 있죠. 승리에 집착하는 것보다 승리 이외의 것에 보는 것이 자신에게 행복으로 다가왔고, 그래서 승리에 집착하는 승부욕을 보이는 내 모습보다는 여유로운 나의 모습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 그 모습을 유지하고자 했던 것이었죠.




하지만, 딱 하나 문제가 있었어.

마야카야.



하지만 사토시가 세우려는 새로운 정체성을 흔들고 있던 사람은 다름이 아니고 마야카였습니다. 사토시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는 ‘집착’이라고 할 수 있고, 사토시가 새로 세우려는 정체성은 이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죠. 그런데 마야카와 단순한 ‘친구’라는 관계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관계’로 나아간다는 것은 친구라는 편한 관계와는 다른 각별한 지점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친구보다 더 각별하게 생각하게 되는 한 ‘특별한’ 사람의 등장은 ‘집착’을 버리려는 사토시에게 그 ‘특별한’ 사람에 집중하는 ‘집착’이 있어야 하는 ‘사랑하는 관계’란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야카가 사토시에게 있어 그냥 친구라고만 생각되는 존재였으면 상관없을 문제였지만, 마야카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꿈 같은 이야기라 말할 만큼 사토시가 마야카를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죠. 마야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니까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마야카를 ‘특별한 관계’로 상정해 ‘집착’하는 ‘사랑하는 관계’로 나아가기엔, 지금의 사토시는 ‘집착’하지 않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고 있습니다. 마야카와 각별한 관계가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이라는, 무조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 하나를 버려야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그 두 선택지를 전부 선택하는 방법은 대답을 회피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대답을 회피하게 위해, 초콜릿을 받는 당사자인 자신이 그 초콜릿을 훔치는 일까지 벌이면서 말이죠.


하지만 이런 사토시의 불안감도 조만간 끝을 맺거나 이미 맺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사토시는 착한 캐릭터라고 하기엔 어딘가 영악한 면이 있다고 느껴지는 캐릭터입니다. 호타로를 상대할 때도 그저 유쾌함만을 위해 놀리는 것이 아니라, 은근슬쩍 그 놀림 안에 뼈를 집어넣어서 호타로를 곤경에 빠뜨리는 경우도 많죠. 호타로가 치탄다와 본격적으로 얽혀버린 것도 사토시가 호타로를 은근슬쩍 ‘이런 때는 쓸만한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남겼기 때문이구요. [6화. 대죄를 범하다]에서도 사토시에게 화를 밀어부치는 마야카에게 호타로가 잠시 틈을 준 사이를 이용해 마야카가 화냈던 일을 흐지부지 넘겨버리는 때도 있었고,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에서도 사토시가 동경하는 것이 셜록키언이라고 했던 마야카의 말을 사토시가 확실히 그렇다고 말하지 않고 흐지부지 넘긴 적도 있구요. 사토시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는 사토시가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재미있지만 파고들지는 않고, 신경은 쓰지만 집착하지는 않는. 이런 배경에서 비롯되어, 사토시는 호타로가 사건을 추리하는 것을 지켜보는 건 흥미롭지만 자신이 열혈적으로 결론을 내는 당사자는 되고 싶지는 않은 데이터베이스라고 자신의 역할을 규정한 것이죠.


한마디로 어물쩍 넘어가는 것을 잘하는 캐릭터라는 뜻이다.


사토시에 대해 위처럼 생각해봤다면, 왜 마야카가 사토시에게 마음이 있는지는 언뜻 봤을 때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많습니다. 표면적인 성격만 봐도 마야카는 아닌 건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해야 하는 성격인 반면, 사토시는 속마음은 어떨 지 모르지만 적어도 겉으론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넘기는 타입이죠. 자신이 정한 길에 열심히 몰두해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마야카에 비해, 사토시는 자신이 좋아하는 길에도 그다지 성실하게 임하지는 않죠. 마야카는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바를 절대로 벗어나지 않는 완고한 입장을 유지하는 반면, 사토시는 필요하다면 자신을 악역으로 만드는 것도 망설이지 않죠. 이렇게 보면, 사토시와 마야카는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서로를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겉모습만 보면, 이 둘이 커플이 되었을 때, 맨날 싸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어떤 한 사람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과정에 꼭 어떤 논리적인 이유가 붙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것에는 논리가 없는 것이 정상이고, 상대에게 고백해야 될 때나 다른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계가 되었음을 알려줘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와 같이,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할 때가 되어서야 감정의 뒤를 따라오는 것이 논리라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3자의 입장에서 캐릭터의 행동을 지켜보는 독자의 입장이고, 독자의 입장에서는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는 논리적인 이유를 듣고 납득하기를 원하는 아이러니한 입장에 있기도 하죠.


이런 관점을 미리 깔아두고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서로가 겉모습 안에 숨기고 있는 각자의 속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마야카에 대한 캐릭터를 언급하면서, 마야카는 겉으론 완강하게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 신념을 유지하기엔 너무 여린 성격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 성격을 다른 말로 바꾸면 ‘흔들리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흔들리는 모습은 사토시한테서도 발견된 모습이죠. 자신이 옳은 바를 지키고자 하지만 그것을 완강히 지킬 힘이 없는 마야카와 자꾸만 튀어나오는 승부에 집착하는 모습을 눌러가며 여유로운 자신의 모습을 힘겹게 세우고 있는 사토시의 모습은 ‘흔들리는 모습’이라는 것에서 본질적으로 겹칩니다.



이렇게 둘이 본질적으로 같은 상황에 처한 둘은 선택한 행동 방식이 다릅니다. 마야카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완강히 세우려고 하는 사람이지만 번번히 실패하는 인물입니다. 주변 시선에 신경을 끌 정도로 완고한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세운 완고한 입장을 자기 손으로 무너뜨리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죠. 하지만 사토시는 자신이 악역으로 보일 때가 생기더라도 자신이 만들려고 하는 새로운 모습을 어떻게든 세워보려고 하는 사람이죠.


이렇게 본다면, 마야카는 사토시가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쿠드랴프카의 차례>에서 구체적인 말 없이도 사토시의 기분을 다 알고 있듯이 이야기했던 마야카를 생각하면, 이런 사토시의 속사정을 모를 리가 없었겠죠. 그리고 사토시가 초콜릿을 훔친 것이 대답을 회피하기 위해서 였다는 것도 마야카는 다 알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자신의 고백에 대답을 두 번이나 회피해버린 사토시의 모습을 보고 괴로운 감정이 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죠.




하지만, 조금 힘드네.



사토시의 시선에서도 마야카의 성격은 당연히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최고가 될 수 없다는 한계를 이미 설정해버린 자신에게, 그 한계를 뛰어넘어 최고가 되려고 정진하는 마야카의 모습은 자신에게 없는 모습으로써 동경의 대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자신이 세우려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번번히 실패하는 마야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자신의 모습을 세우려고 하는 마야카의 모습이 사토시에게는 멋진 모습이겠죠. 둘의 마음이 서로를 마음에 들어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 둘이 자꾸만 겉을 빙빙 도는 이유는 해결해야하는 문제가 서로가 서로의 마음이 어떤 지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각별한 감정을 인정해 변화하기엔 두 사람이 지금은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는 너무나도 불안정한 과정 안에 있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죠.




너는 요령도 좋은 주제에, 너무 요령이 없어.



사토시의 말을 다 들은 호타로는 사토시에게 이런 말을 던집니다. 사실 ‘각별한 관계’가 되는 것이 반드시 ‘집착’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죠. 호타로가 보기에, 자신이 원하는 상황을 요령 좋게 잘 만들어내는 녀석이 그 ‘사랑하는 관계’로 ‘집착’하는 관계로 변질되는 것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잘 하는 녀석이 쓸데없는 걸로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인 셈입니다. 호타로는 이것이 단순히 ‘사랑하는 관계’가 ‘집착’으로 변질될 수 있음에 대한 불안감에 대한 문제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자신에게도 그런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죠.


다음 포스팅은 사토시와 마야카의 관계보다도 더 독자에게 답답함을 선사했던 두 사람.

에루와 호타로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금요일의 포스팅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아... 역시 사랑 이야기는 재밌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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