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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멋대로 리뷰

[내멋대로 리뷰/No.10/애니메이션] 「빙과」: Part.9 "<쿠드랴프카의 차례>: 기대, 그 잔혹한 말 (2)"



※ 이 포스팅은 TV 애니메이션 「빙과」의 스포일러 요소를 포함합니다. ※


※ 객관적인 정보는 일본 위키피디아 및 나무위키를 참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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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보고 계신 포스팅은 「빙과」 연재분의 9번째 포스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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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잠깐 언급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잠깐 지분을 할애해 ‘이바라 마야카’라는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마야카라는 캐릭터가 마냥 이미지가 좋은 캐릭터는 아니죠. 특히 호타로 중심의 1인칭으로 주로 진행되는 이 작품에서 마야카는 호타로에게 냉소적인 표정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아, 호타로를 바라볼 때 날카로운 눈매를 동원하는 마야카 표 무표정은 느끼는 사람에 따라 기분이 나쁘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 첫인상이 썩 좋기만 했던 캐릭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첫인상에 비해서 지켜보고 있으면 또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캐릭터가 또 마야카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올바르다고 믿는 것이 있어서 그것과 다른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앞뒤 안 가리고 따지는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그 정의감을 100% 다 관철할 수 있을 만큼 당찬 캐릭터도 아니죠. 이 두 성질 사이에서 벌어지는 괴리감이 마야카라는 캐릭터를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만듭니다. 이 괴리감이 나중에 호타로를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를 주는 요소이기도 한데, 마야카가 초반에 호타로에게 왜 그렇게까지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는지에 대해선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똑 부러지는 정의감 넘치는 성격과, 그 정의감을 관철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따라오는 몇 가지 사소한 불이익들, 예를 들면 독설을 던지고 나서 돌아오는 상대의 기분 나쁜 표정이나 적당히 넘어가자고 결정된 상황에서 적당히 넘어가는 것을 반대하고 나섰을 때 생기는 집단의 반항감 등을 대담하게 견디기에 여린 성격이라는 독특한 마야카의 특징이, 역으로 마야카 자신을 무력하게 당하는 입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일을 자주 일어나게 합니다. 이제까지는 서로 생글생글 잘 넘어가는 분위기의 고전부 4인방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이었기에 그 점이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문화제 기간에 만화연구회에서 보여준 마야카의 입장은 자신의 성격이 자신에게 신경이 안 쓰일 수 없는 불이익의 형태로 돌아온 일의 대표적인 사례죠.


행위자가 의도했던 것과 달리 일이 커져버린 것이긴 하지만,

이 사건은 말 그대로 상당히 험한 꼴을 당한 것이다.


만화연구회를 배경으로 잡기 시작하면, 이미 마야카는 만화연구회에서 자신을 안 좋게 생각하는집단이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만화연구회의 선배와 명작에 대한 논쟁을 하는 장면에서 마야카를 싫어하는 패가 생긴 이유를 짐작할 수 있죠. 원래 만화연구회에선 코우치[각주:1] 선배를 주축으로 귀여운 캐릭터의 포스터를 그려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반대로, 마야카는 고전 명작 만화 100개를 리뷰하는 문집을 내자고 했죠. 마야카가 어느 시대에 나왔건 상관없이 명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마야카는 그저 귀여운 캐릭터를 그려내는 것보다 문집을 내는 쪽이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집 판매 만으론 만화연구회에 사람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일은 어려웠습니다. 당연히 이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코우치 선배는 이런 옛날 명작을 다시 보는 것 따위는 의미 없는 일이라고 마야카에게 도발을 걸었고, 이에 대응했던 것이 바로 마야카와 코우치 선배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사실 마야카가 이 의견을 꿋꿋하게 관철하는 인물이었다면 그냥 캐릭터 파와 명작 파라는 두 개의 부류가 만화연구회에 존재하는구나, 하는 문제로 끝났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야카를 탐탁지 않게 보는 세력이 생긴 이유는 마야카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태도만 보이기엔 여린 성격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야카가 여린 성격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게 바로 만화 캐릭터의 코스프레를 결국에는 하고 왔다는 것인데요. 코스프레의 의미를 격하시키는 말은 아니지만, 코스프레라고 하는 것은 작품 그 자체보단 작품 안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강조하는 행위 중에 하나라고 보는 것이 맞죠. 그렇게 때문에, 작품을 중시하는 마야카가 이 코스프레를 흔쾌히 하고 싶다고 말할 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 의견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성격이면 그러려니 했을 것인데, 결국 만화연구회 전체가 결정한 코스프레를 하자는 분위기에 반기를 들지 못 하고 코스프레에 동참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마야카의 성격을 생각하면 자기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 제일 먼저 몸과 목소리가 나가는 성격이었을 것인데, 그렇게 큰 소리 치면서 반대하던 사람이 행사 당일에는 결국 순순히 모두가 결정한 것을 따른 모습은 아니꼽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마야카는 결국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그 자리에서 이게 옳다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말 그대로 ‘정의’에 어울리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만화연구회라는 사람이 잘 모이는 곳에 고전부의 문집 [빙과]를 놓아주면 좋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코우치 선배가 명작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도발에 응전하고 [빙과]를 놓아달란 부탁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리고 축제 기간 동안 마야카가 당했던 모든 불이익, 요리 행사 “와일드 파이어”에 제시간에 가지 못 한 것이나 물감을 뒤집어 쓰게 된 일 등의 원인은, 바로 코우치 선배와 한바탕 말싸움을 한 것이었죠.




명작은 처음부터 명작으로 태어나는 거예요.





그러면 마야카가 자신에게 좋지 않은 상황이 형성되어도 자신이 믿는 것을 관철하는 원동력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화연구회의 사건으로 한정 짓자면, 마야카가 시대를 초월해 전해지는 명작이 있다고 굳게 믿게 된 것은 바로 문제의 그 만화책, [밤에는 시체로]였습니다. 이 만화의 제목을 불렀을 때, 명작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고 결국 독자에 따라 다른 것이니까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만 만들면 된다는 코우치 선배의 말문이 막히게 됩니다. 이 작품을 “논쟁의 종결자”라고 봐도 될 정도죠.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밤에는 시체로]라는 작품이 명작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근거로 제시한 마야카의 반응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제3자의 입장인 호타로마저도 확실하게 “좋은데, 이거.”라며 황홀한 표정으로 반응하죠.



그러다가 코우치 선배의 친구, 유아사[각주:2] 선배를 통해 [밤에는 시체로]의 원작 담당이 코우치 선배의 친구 안죠 하루나安城春菜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호타로의 누나 토모에를 통해 입수한 [밤에는 시체로]를 본 에루가 어디서 본 것 같은 그림이라는 추측에 따라, 문화제의 홍보 포스터를 그린 학생회장 쿠가야마 무네요시陸山宗芳가 작화 담당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여기에 또 하나의 정보가 주어집니다. 그것은 바로, 코우치 선배가 정말로 명작이라는 것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죠.




아야코는 말이야, 진심이 아닐 거야.



코우치 선배가 명작이 없다는 말이 진심이 아님에도 명작 같은 건 없다는 말을 했다는 괴리감의 원인은, 문화제가 정리된 후 마야카가 뒤늦게 [밤에는 시체로]를 코우치 선배에게 들고 왔을 때 드러나게 됩니다. 아무리 명작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는 명작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취향과 맞지 않는 몇몇 단점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을 정도로 흡입력이 있는 작품이라는 것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이죠. 명작이라는 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창작자에게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좋은 작품이라는 건 만들 수 없다’는 뜻으로, 창작자가 창작을 하고 있는 의미를 통째로 부정하는 상당히 폭력적인 발언입니다. 그걸 만화를 그리는 창작자의 입장인 코우치 선배가 모르고 있을 리가 없겠죠.




너, ‘읽으면 안다’, 그렇게 말했지?

그래, 알고 있어. 알게 되어버린다고.

하지만, 그 말야, 그런 건 인정하고 싶지 않잖아?

너라면 어때? 만화를 별로 안 읽는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말야,

첫 원작으로 말야, 그걸 만들어냈다고 했다면 말야.

어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코우치 선배는 [밤에는 시체로]가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명작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에 명작은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친구가 만든 작품이 그런 대단한 명작이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기에 그걸 인정할 수 없어서 명작은 없다는 말을 만들고 회피한 것이었죠. 그것도 그 친구가 만화에 별로 관심도 없어 보였고, 더군다나 그 친구의 첫 원작이었다면 말이죠. 코우치 선배는 [밤에는 시체로]의 등장으로, 자신과 친구 안죠 하루나 사이에 어쩌면 자신이 평생 노력해도 넘어갈 수 없는 격차가 있음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를 있는 같은 능력의 소유자 사이에서 많이 봤던 그 구도가 또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코우치 선배는 그 격차에서 나오는 감정이 ‘기대’라는 것까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죠.




그게 말야, 읽어버리면 전화해버릴 것 같단 말이야.

그런데 전화 해서 말야,

‘읽었어, 너 대단하잖아? 다음 작품도 기대할게.’

같은 말은 할 수 없잖아?



코우치 선배의 진심을 마주한 마야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코우치 선배가 씁쓸한 기분을 밝힌 후 퇴장하고 마야카 혼자 남겨진 야외 연결 복도. 코우치 선배가 서있던 난간에 다가간 마야카는, 코우치 선배가 난간에 그린 그림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야카는 그 그림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밤에는 시체로]만큼은 아니었지만, [밤에는 시체로]를 대신해서 명작이 존재한다는 자신의 의견을 증명하기 위해 가져가려고도 했던 작품. 그리고 자신이 만든 작품과 직접적으로 비교했을 때 자신의 작품이 100배 정도는 떨어진다고 절감하게 된 작품. 바로 [바디 토크ボディートーク]의 창작자를 암시하는 고양이 그림이었죠.



이것은 ‘기대’라는 절망적인 구도가 선배 코우치 아야코와 그녀의 친구 안죠 하루나라는 제3자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구도가 자신에게 형성되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마야카는 사토시의 말을 들으며 ‘기대’라는 말 뒤에 숨어있는 어두운 면을 어렴풋하게만 체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코우치 선배가 명작이 있음을 회피하려고 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는 알 것 같다면서도 명작이라는 건 존재한다는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관철하죠. 하지만 그 ‘기대’가 코우치 선배에게도 있었고, 그리고 자신과 코우치 선배 사이에도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마야카는 그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아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 작품은 100배 떨어져





고전부는 아무도 될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던 일을 해냈습니다. 고전부라는 부 활동이 인지도가 낮다는 것과 고전부의 부실이 입지적으로 좋지 않았다는 어려운 상황을 넘어서, 문집 200권을 전부 파는 것에 성공하죠. 말 그대로 ‘기대 이상’의 결과였습니다. 이에 호타로가 ‘기대’라는 말에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부탁’이 자신이 못 하는 일을 넘긴다는 ‘기대’라는 한 변형 형태로 불편함을 느꼈던 에루, 만화 그리는 실력의 차이로 ‘기대’를 절감하게 된 마야카, 그리고 결국 호타로가 자신이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알아버리고 ‘기대’로써 포기해버린 사토시. 하지만 했던 일이라곤 괴도 십문자를 밝혀내고 교섭하는 일과 문집 판매를 위해 부실을 지키는 일 말곤 크게 움직이지 않았던 호타로가 어떻게 고전부 부원들과 같이 ‘기대’의 감정에 얽혀 들어갔을까요? 심지어 호타로는 누군가를 ‘기대’하던 사람도 아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토시에게 ‘기대’를 받는 대상이 되었는데도 말이죠.




’기대’... ‘기대’인가...



자신도 몰랐던 사이에 등장한 사토시가 퇴장했을 무렵, 교섭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호타로에게, 십문자 사건의 범인 타나베 선배가 말을 걸어옵니다.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자신의 친구이자 학생 회장인 쿠가야마 무네요시가 다음 작품 [쿠드랴프카의 차례]의 원작을 분실했다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이죠. 작중에서 행동하는 것을 봤을 때 점잖은 성격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타나베 선배가 온 학교를 들썩이게 했던 ‘십문자 사건’을 일으키면서까지 ‘쿠가야마가 [쿠드랴프카의 차례]의 원작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소리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도, 쿠가야마는 모르고 안죠 하루나는 알 것이라고 덧붙이면서까지 말이죠.



이제까지 제가 계속해서 언급했기에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사건 역시 ‘기대’에 관련된 사건이었습니다. 쿠가야마와 타나베가 똑같이 만화를 그린다는 능력이 있었고, 타나베는 [밤에는 시체로]에서 배경 만을 담당하며 자신과의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를 실감하고 있었죠. 여기까지 였다면, 타나베가 굳이 ‘십문자 사건’ 같은 온 주목을 끌 사건까지 일으키며 소리를 치고자 하는 일까지는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타나베가 쿠가야마의 실력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비교적 깔끔하게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 녀석이 ‘해볼래’라고 한 마디만 했으면, 난 뭐든지 할 생각이었어.”라는 타나베의 말을 참고하면 자신의 역할을 이미 어느 정도 주역이 아닌 조력자로 생각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죠.




원작은 분명히 있어. 잃어버렸다든지 한 게 아니야.

그 녀석이 할 마음만 먹는다면, [밤에는 시체로]를 뛰어넘는 작품까지도 될 수 있었을 거라고!

하지만, 무네[각주:3]에게 만화 그리기는 그 순간만의 ‘놀이’였어.



하지만 그럼에도, 타나베가 온 학교를 상대로 ‘십문자 사건’을 일으키면서까지 ‘기대’라는 화려함과 잔혹함의 양면을 지닌 단어를 소리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것은 나보다 높은 실력을 가진 그 사람, 쿠가야마가 그 때 발휘했던 능력을 ‘장난’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기대’를 하는 사람의 절망감은 이제까지의 ‘기대’에서 한 층 더 큰 절망감으로 굴러 떨어집니다. 내가 이제까지 노력해서 쌓았던 능력을 우스울 정도로 순식간에 따돌리는 한 사람의 등장. 그것만으로도 감당하게 벅찬 ‘기대’의 절망감에, 그 때 그 사람이 보여준 능력이 진심이 아니라 ‘장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격차에서 발생하는 더 한 절망감을 그저 쿨하게 덮고 넘어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이 절망적인 격차에서 발생하는 ‘기대’가 타나베를 ‘십문자 사건’을 일으키면서까지 ‘쿠가야마가 [쿠드랴프카의 차례]의 원작을 잃어버렸다’는 거짓말, 그 안에 숨겨진 ‘기대’를 고래고래 소리치게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그 사람의 아득한 능력이 장난이라는 말을 접했을 때 이제까지 내가 해온 노력에 대해 보상 받을 절망감을 위해. 한다고만 하면 무엇이든 다 해줄 테니까 그 절망감만은 극복할 수 있도록, 분명히 있을 것인 그 원작을 일단 읽어봐주고 생각이라도 해달라는 그런 처절함을 담았던 메시지. 그것이 바로 타나베가 ‘십문자 사건’으로 소리치고 싶었던 말일 것입니다.




그러면, 선배가 진심으로 전하고 싶었던 말은 이건가요?

‘쿠가야마, 너는 [쿠드랴프카의 차례]를 읽었나?’





호타로까지 타나베를 통해 ‘기대’라는 말을 듣게 되어, 결국 고전부 부원들이 모두 ‘기대’의 진짜 모습에 근접하거나 혹은 그 실체를 정확히 알아버리고 말았던 축제 기간이었습니다. 아마 쿠가야마는 타나베의 생각과는 다르게 ‘십문자 사건’의 의미가 뭔지는 알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폐회식을 진행하는 에필로그에 쿠가야마가 타나베에게 ‘수고했어’라는 말을 전하는 장면에서, 쿠가야마는 ‘십문자 사건’의 범인이 타나베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쿠가야마가 타나베의 목소리를 들어줄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쿠가야마가 장난스럽게 던지는 ‘수고했어’라는 말과, 그 말을 들은 타나베가 다시금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돌아간 것을 봤을 때, 쿠가야마는 어쩌면 그 사건의 의미를 알고서도 마치 장난이었던 것처럼 생각하고 다시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 펜을 잡지 않았을 지도...



제 생각이지만, ‘쿠드랴프카’라는 소재를 제목에 인용한 것은 ‘우주 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계기’라는 화려한 이름표와 ‘인류의 실험에 희생된 동물’이라는 잔혹한 이름표를 동시에 달고 있는 ‘쿠드랴프카’의 특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화려한 문화제, 그리고 그 뒤편에 숨겨진 몇몇 사람들의 열등감. 그 모습 전체가 마치 화려한 능력을 향한 동경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포기와 절망을 같이 담고 있는 ‘기대’의 모습과도 닮아 있는 ‘쿠드랴프카의 축제’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쿠드랴프카의 차례]라는 만화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로켓에 태워져 지구로는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었던 ‘쿠드랴프카’를 뜻밖의 일로 제명에 죽지 못 한 ‘비명횡사’의 의미로 생각한다는 사토시의 말에 따라, [밤에는 시체로]라는 화려한 작품으로 시작했으나 그 이상 더 나아갈 수 없게 되어 버린 만화 [쿠드랴프카의 차례]에 대한 의미일지도 모르겠구요.



예상보다도 조금 더 길게 <쿠드랴프카의 차례> 편을 다뤘습니다. 이제 「빙과」 리뷰의 연재도 중반을 넘어섰네요. 다음 포스팅부터는 단편집 <멀리 돌아가는 히나>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가 있는 이야기들을 해볼까 합니다. 이후로는 몇 가지 작은 주제들을 상정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빙과」의 리뷰를 마무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다음 포스팅은 ‘나와 타인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멀리 돌아가는 히나>의 첫번째 편입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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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풀 네임은 코우치 아야코河内亜也子 [본문으로]
  2. 풀 네임은 유아사 쇼코湯浅尚子 [본문으로]
  3. 타나베가 쿠가야마 무네요시를 부르는 애칭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