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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재방영(상영)관

#6. 약자가 약자로서 승리하다 (애니메이션 「노 게임 노 라이프」)




※ 이 포스트 및 영상은 애니메이션 「노 게임 노 라이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시작 전, 안내사항입니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작품은 다른 작품에 비해 입문하기 위한 허들이 조금 높은 작품입니다. 각종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패러디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한 걸음만 선을 넘으면 TV 애니메이션으론 방영할 수 없는 야한 유머 코드도 거의 매화마다 볼 수 있죠. 한국 심의 등급으로 이 작품은 19금 작품입니다. 따라서 이 포스트 및 영상을 보신 뒤에 이 작품을 접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이 점을 각자의 취향에 맞춰 판단하신 뒤 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이 포스트 및 영상은 이제까지 언급한 면면들에는 주목하지 않으므로, 편하게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스카이포스터의 애니메이션 재방영관]은 방송 심의 규정을 준수합니다.


1. 이 작품은 무슨 재미를 주는가


이 작품이 주는 재미 중에 하나는 엎치락뒤치락하는 게임에 참가한 플레이어의 모습을 긴장감있게 지켜보는 재미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잘 짜여진 '머리 싸움'이라고 하기엔 다소 허술한 구석이 있죠. 게임의 판이 커지면서 점점 꼼꼼해지긴 하지만 말이죠.


사실 이 작품의 재미는 조금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바로 사람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재미죠. 이 작품이 '머리 싸움'으론 다소 허술한 작품일지 모르지만, 이 작품이 지키고 있는 두 가지 원칙은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재미만큼은 확실히 보장합니다. 오늘 이 포스트 및 영상에서 주목하려는 질문이 바로 이겁니다.


이 작품은 어떻게 사람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가





2. 거대한 힘의 우위를 뒤집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줍니다. 주인공 소라와 시로, 즉 공백이 상대하는 존재는 사람의 한계를 초월한 존재들입니다. 플뤼겔 지브릴은 압도적인 힘을 가진 학살 병기, 워비스트는 물리 한계를 뛰어넘는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종족이죠. 이들의 힘을 마주할 때 소라와 시로가 이들의 아래에 위치하는 화면 구도는 이 힘의 우위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게임에 거는 판돈도 자기 목숨 정도는 우스울 정도고, 게임의 무대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우주 공간까지 확장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두 주인공이 제정신이 아닌 거대한 사이즈의 일을 벌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넓은 세계를 한 화면에 담아내는 큰 그림도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고, 이 작품이 보여주는 형광색에 가까운 배색은 이 거대한 스케일의 표현들이 어울릴 만한 판타지스러운 분위기를 흠뻑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스케일의 존재와 세계에 맞서는 주인공 소라와 시로는 절대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 합니다. 소라가 순간적인 관찰력과 화려한 말 기술을 통한 심리전에 능하고 시로는 빠른 계산과 지식 습득에 능하지만, 방에만 틀어박혀 게임하느라 운동하고는 담을 쌓은 바람에 금방 바닥을 드러내는 저질 체력은 이 둘의 약점이고, 둘이 같이 있으면 무적에 가까운 존재지만 따로 떨어지면 한 명 한 명은 한 사람 몫보다 조금 모자란 존재들이 되죠.


즉, 주인공이 이런 거대한 스케일의 존재와 세계를 상대하는데, 주인공은 이 스케일에 비해 초라해보이기 그지 없는 인간입니다. 이 둘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능력을 남에게 빌려오기는 해도 절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쓰지는 않죠. 그런데 이 둘은 '인간'인 채 이 거대한 존재와 세계에 게임으로 겨뤄 기필코 승리를 얻어냅니다. 이 작품이 사람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지점이 바로 여기, 말도 안 되는 힘의 격차를 극복하고 인간의 모습으로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이죠.





3. 강자를 상대로 어떻게 승리를 만드는가


특히 이들이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지점은 무심코 당연하다고 믿어버리는 오만입니다. 크라미는 엘프의 힘이 있으니까, 라고 생각했다가 역으로 당했고, 지브릴도 자만에 빠졌다가 소라가 쪽지에 적었던 단어를 쓰도록 유도 당했고, 워비스트도 인간 따위는 게임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않아도 된다는 자만에 빠졌다가 그 허점을 빠져나와 게임에 대한 기록을 남긴 전 국왕의 도움을 받아 소라와 시로에게 게임을 간파당합니다. 관습적으로 그러니까 당연히 그럴 것이다. 내가 더 힘이 세니까 상대방은 당연히 약할 것이다. 당연하다는 이유로 되려 논리를 잃어버린 곳을 파고드는 것이 바로 소라와 시로, 즉 공백이 강자를 상대하는 방법이죠.



이런 방법이 가능한 이유는 소라와 시로가 자신이 약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법을 쓸 수 있는 정령회로에 접근하는 건 둘째 치고 느끼는 것조차 못 하는 이마니티 족, 즉 인간이 정령회로에 접근할 수 있는 다른 종족을 상대로 대결을 벌이고자 한다면, 인간은 절대로 정면 승부를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이 격차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을 낮추며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이길 수 있는 판이 만들어지면 이들은 상식에게도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지죠. 이것이 바로 약자가 자신이 약자라는 자각했을 때 나오는 힘입니다.





4. 제로에서 시작하는 인간의 가능성


그래서 소라와 시로는 재미있게도 인간을 질리도록 싫어하면서도 인간의 가능성을 믿는 독특한 캐릭터가 됩니다. 이들의 싫어하는 감정은 무심코 오만해지는 인간을 향합니다. 나는 힘이 강하니까 당연히 이길 것이라는 강자의 생각도 오만이지만, 나는 힘이 약하니까 당연히 질 거라 생각하고 숨어버리는 약자의 생각 또한 사실 맥락을 같이 하는 오만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약자라고 생각하는 소라와 시로도, 이 오만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비웃죠. 하지만 약자라서 다른 방법을 찾아 도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의 도전이 실패로 끝나는 일도 많지만, 이들이 성공을 이뤄내면 인간을 발전시키는 한 줄기 빛이 되곤 하죠. 약자의 감각이 인간의 오만함을 만들기도 인간의 가능성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 이것이 소라와 시로가 질리도록 싫어하는 인간의 모습이며, 소라가 시로가 보여주는 인간의 희망이자, 소라와 시로가 기대하는 인간의 가능성입니다.



"인정해라! 우리는 최약의 종족!

그 무엇도 가지지 않고 태어났기에,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최약의 종족이라는 것을!"



인간이 인간인 채, 약자가 약자인 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존재와 세계를 상대로 게임을 즐기며

그 게임에서 기필코 승리를 얻어내는 열혈 게이머의 이야기.


<노 게임 노 라이프> 였습니다.



그리고 열정 가득한 관현악부의 이야기, <울려라! 유포니엄 2>가 7번째 이야기로 길게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유튜브 전용 콘텐츠로 <울려라! 유포니엄>을 보신 분들을 위한 <울려라! 유포니엄 2> 가이드 리뷰 영상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해주세요!



저는 다음주 [재방영관] 업로드를 쉬고, 그 다음주에 돌아오겠습니다.

모두들 명절 후유증 없는 평안한 설날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