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이야기하는 낭인,
스카이포스터입니다.
본래 계획했던 영상에 사소한 문제가 좀 생겨서, 재상영관 콘텐츠로는 꽤 오랜만에 등장했습니다. 제 YouTube 채널에 본래 기획했던 영상인 #3-3P(프롤로그)가 있으니, 오늘 포스팅을 이해하기 어려움이 있으시면 이 링크를 타고 해당 영상을 시청하시는 것도 한 번 고려해보시길 바랍니다. <마음은 외치고 싶어해>라는 작품을, 주인공 캐릭터 나루세 쥰의 시점을 중심으로 재구성해본 영상이니 작품을 다시 떠올려볼 겸 도움을 받으셔도 좋겠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주인공 캐릭터, 나루세 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쥰이라는 캐릭터의 심리를 이 작품은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지. 쥰의 심리 상황을 만든 쥰의 주변 상황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쥰의 성장이 왜 값진 것이었는지. 이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 포스팅에서 해보겠습니다.
[스카이포스터의 애니메이션 재상영관]
세번째 이야기,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마지막 대화를 "말하며 성장하고 같이 살아가기"라는 제목을 걸고 시작해보겠습니다.
* 이 포스트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
* 화면 인용을 확인하고 싶으신 분들은, 위의 영상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이 작품은 쥰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던 과거 사건에 느꼈던 심리와, 타쿠미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들어버렸을 때 느낀 심리를 비슷한 것으로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 두 사건의 연결 고리가 되는 것은 쥰이 자신의 과거 사건에 상상력을 가미해 만든 뮤지컬인데요. 이 작품은 과거 사건에 기반을 두고 있는 뮤지컬을, 뮤지컬을 단념해 언덕 위 성(러브호텔) 안에서 좌절에 빠진 쥰의 모습과 붙이려는 연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뮤지컬의 음악을 배경음으로 그대로 이어가거나, 순간적으로 어디에서 나오는 말인지 헷갈리도록 화면을 암전(까맣게 만드는 것)시키는 연출 등이 있죠.
위의 의도가 맞다는 가정 하에 이야기를 이어가면, 쥰을 지배하고 있는 심리는 바로 죄책감입니다. 당연히 쥰의 심리가 죄책감 뿐만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 제일 지배적인 심리가 죄책감이라는 건 작품 여기저기서 드러나는 부분인데요. 과거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뮤지컬의 내용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직접 처벌하는 자책과 죄책감의 모습에 가깝고, 이 뮤지컬 내용으로 연결되었다면, 뮤지컬을 단념한 쥰이 느끼고 있는 심정 또한 죄책감입니다. 대사에서도 드러나는 부분이죠.
"내 떠드는 버릇 때문만 아니었으면!"
타쿠미와 나츠키가, 쥰이 자신들의 말을 들어버린 것에 죄책감을 느꼈을 거라 말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특히 타쿠미는, 쥰의 상상력이 발휘된 달걀 이야기를 제일 직접적으로 들어주고 또 제일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 인물입니다. 심지어 과거에 쥰과 비슷한 일을 겪은 적도 있었죠. 즉, 타쿠미는 누구보다도 쥰의 심리가 죄책감에 제일 크게 지배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겁니다. 타쿠미가 그걸 알고 있다면, 자신이 나츠키에게 했던 말이 쥰에게 어떤 파장을 만들지 사실은 충분히 알고도 남았을 겁니다. 유일하게 의지할 사람을 찾았는데 그 사람마저도 거짓이 되어버린 좌절감. 거기에 자기가 책임을 질 사건이 아닌데도 자신에게 책임을 덮어씌우려는 죄책감. 이 두 감정이 같이 생겼을 때 쥰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타쿠미는 충분히 예상할 자리에 있었죠.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다이키도 예상한 일을, 누구도 아닌 타쿠미가 예상 못 했을 리는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타쿠미라는 한 개인만의 잘못이 아니라, 쥰을 죄책감의 심정으로 몰아버릴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이 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죄책감을 품어야 되는 사람과 실제로 품는 사람이 따로 생겨버린 쥰의 과거 사건에서 이미 쥰을 둘러싼 환경은 최악이었지만, 쥰을 몰아부치는 일에는 사실 쥰에게 별달리 악의가 없는 다수의 사람들도 가담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쥰의 집을 찾아온 부녀회장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쥰의 엄마가 그런 사람인데, 이들이 쥰과 어떻게 대화하는 지를 보시면 쥰의 어떤 비언어적인 사인에도 관심을 보내지 않은 채, 쥰이 대답할 틈도 없이 자신의 말을 계속 밀어부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쥰이 뮤지컬을 단념한 이유가 알려졌을 때 순식간에 쥰에 대한 나쁜 말들이 반 전체에 퍼져나가는 모습 또한 쥰의 주변 환경이 그렇게 자비롭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죠. 우리는 쥰의 이런 환경을 봐왔기 때문에, 그래서 쥰이 만들어낸 성장은 극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심지어 자신이 자기의 말을 하는 것도 아직 서투른 상태에서, 타인의 말과 심리까지 신경 쓰는 쥰의 모습은 대단하다는 말 밖엔 할 수가 없죠.
하지만, 타쿠미의 말 한 마디에 쥰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포기한 반응까지 보인 건 그 때까진 쥰의 성장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한계란, 바로 그 성장이 타쿠미라는 자신 바깥의 존재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장은 자신을 구해줄 왕자를 찾는 어릴 때의 모습과 달라지지 못한 모습이며, 어떻게 바뀔 지 보증할 수 없는 불안정한 타인에 의존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의존하는 타인의 상태에 따라 불안정해질 수 밖에 없다는 위험을 떠안고 있죠. 쥰을 둘러싸고 있던 환경을 생각하면 쥰을 도와주는 타쿠미와 같은 존재는 반드시 필요했지만, 쥰은 언젠가 반드시 이 성장의 힘을 타쿠미라는 타인에서 자신으로 옮겨와야 했죠. 그런데 쥰이 제일 처음으로 자신의 말을 전달하고 싶었던 엄마를 향한 노래도 성공시키지 못 하고 '말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굳건히 생기기 이전에 쥰은 타쿠미가 자신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들어버렸습니다. 타인에 의존하고 있다는 성장의 한계가, 아직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세워지기도 전이었다는 좋지 못한 시기를 만나 터진 사건이 바로 뮤지컬을 단념한 사건이죠.
이렇게, 쥰에게 있어 최악의 상황이 세팅되는 바람에, 쥰이 도달한 성장이라는 결과물은 그래서 더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타쿠미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제일 솔직한 말을 꺼내주었기에 이제까지 자신이 만든 성장의 과정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성장이 사실은 이미 쥰의 바랐던 수준을 넘어섰다는 걸 알고 자신감이 붙은 쥰 역시 타쿠미에게 솔직한 마음을 꺼내고 타쿠미의 마음도 확인하며 타인의 의존에서도 벗어나게 됩니다. 이에 관련된 연출은 쥰의 과거 이야기를 누구의 목소리가 말해주느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처음엔 쥰의 과거 이야기인데도 이를 타쿠미(혹은 달걀)의 목소리가 말하다가 이를 점점 쥰이 넘겨받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타쿠미와 쥰의 목소리가 주고 받으며 나레이션을 말하는 결말은, 쥰이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을 달성함과 동시에 타인과 더불어 말하고 사는 법까지 알게 되었다는 값진 성장이 되는 겁니다. 쥰의 성장이 더욱 값져보였던 것은 이런 점들 때문이죠.
[ 에필로그 ]
말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이 작품 이야기를 하는 동안 저는 줄곧 말은 무엇이고, 또 대화란 무엇인가를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저한테 말이 뭐냐 딱 집어서 말해보라고 하신다면, 저는 여전히 그에 대한 대답을 내기 어렵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말은 개개인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 다르지만 또 누구나 비슷하게 받아들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말은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치유가 되기도 하고, 말을 가려서 해야한다고 말하지만 말을 가리지 않는 게 되려 필요한 순간도 있죠. 기본적으로 말을 타인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한 약속이라고도 하지만, 굳이 타인이 들어주지 않았으면 하는 혼잣말도 있습니다. 결국 쓰기에 따라 아무 것도 안 되면서 또 뭐든 되는 게 말이라는 것이겠죠.
우리가 이런 불안하면서도 불확실한 말을 쓰는 이유는, 우리가 여러 사람들과 어우러져 같이 살아가는 사회 안에서 살고 있는데,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볼 수 없고, 오직 타인의 마음을 그 사람의 말과 말을 대신할 수 있는 여러 다양한 수단을 통해서만 알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말은 사회를 살아가며 반드시 사용해야하면서도 그 말이 가져올 파장을 고려하는 책임을 부여하는 일 또한 반드시 필요한 일이겠죠. 말하는 상황이 반드시 필요한 건 어떤 상황인지, 말의 무게와 책임을 특히 더 생각해야하는 때는 언제인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쥰의 이야기, 타쿠미, 나츠키, 다이키로 대표되는 청춘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 작품에서 어느 정도 얻으셨다면, 이 작품을 보시는 일이 더 의미있는 일이 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말과 함께 살아가실 여러분들을 위해.
말을 통해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 지낼 여러분들을 위해.
대화한다는 것과 같이 지낸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답을 찾은 캐릭터들의 이야기와 제 이야기를 이 작품에 담아드려 봤습니다.
이것으로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작품은 휴식 기간 없이 빠르게 돌아올게요. 휴식 기간 없이 돌아오는 이유에 대해선, 아래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영상 후반에 여러분들께 묻는 설문조사도 있으니 여유가 되시면 꼭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
일교차 심한 요새 감기 조심하시고,
저는 그럼 다음 포스팅에서 뵙겠습니다!